[기사원문]
시스티나 성당 투표 준비로 폐쇄
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을 뽑는 콘클라베가 다음달 7일(현지시간) 시작된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28일 열린 추기경단 비공개 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콘클라베가 열리는 시스티나 성당은 전날 방문객들을 받은 후 투표 준비를 위해 이날부터 관광객 입장이 금지됐다. 이번 콘클라베는 전 세계 만 80세 미만 추기경 135명이 참여한다. 3분의 2 지지를 얻는 추기경이 나올 때까지 투표는 매일 되풀이된다. 14억 명의 신도를 이끌 가톨릭교회의 차기 지도자가 결정되면 성당 굴뚝으로 흰 연기가 올라온다.
이번 콘클라베는 가톨릭 역사상 가장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콘클라베에 참석하는 추기경들의 경력, 지역, 연령 분포 등이 다양해 공감대를 찾기가 어려운 탓이다. 추기경단 80%는 최근 12년 사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뽑았고 그중 20명은 지난해 12월에 추기경에 서임됐다. 상당수는 지난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으로 바티칸을 찾기 전까지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포용적으로 추기경단을 구성하려고 노력한 만큼 추기경들의 출신지도 다양하다. 이란, 알제리, 몽골 등에서도 추기경이 배출됐고, 이같은 추세 속에 유럽과 북미와 같은 가톨릭 중심부가 추기경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졌다.
새 교황 후보를 둘러싼 로비전은 벌써 가열되고 있다. 교황청 내 복도, 식당, 정원 등에서 가톨릭의 방향성에 관심이 많은 추기경들의 즉석 회의나 홍보전이 속도를 더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보수진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지지하는 프랜시스 레이먼드 버크(미국), 게하르트 뮐러(독일) 추기경이 로비전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관측된다. 진보진영에서는 장 클로드 홀러리치(룩셈부르크), 티머시 레드클리프(영국), 마이클 체르니(캐나다) 등이 거론된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2/0004031470
교황 뽑는 ‘콘클라베’, 5월 7일 막 오른다
시스티나 성당 투표 준비로 폐쇄 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을 뽑는 콘클라베가 다음달 7일(현지시간) 시작된다. 마테오 브루니 교황청 대변인은 28일 열린 추기경단 비공개 회의에서 이같이 결정
n.news.naver.com
* 용어 및 정리
시스티나 성당 :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 있는 부속 성당이다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는 장소로 유명하다. <천지창조>로 더 많이 알려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비롯해 <최후의 만찬> 등의 걸작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설립일 : 1483년)
콘클라베 : 교황 임종 시 소집되는 교황 선출 비밀회의로 교황의 선거인이 추기경들이 외부의 간섭 없이 비밀 투표장인 시스티나 성당을 걸어 잠그고 그 속에서 선거를 치른다 ( 콘클라베는 열쇠로 잠그는 방이라는 뜻인 라틴어로 추기경들의 비밀 회의 혹은 주교들의 비공개 회의를 지칭하기도 한다.
밀라노 칙령
1) 313년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와 동로마황제 리키니우스 밀라노에서 발표한 그리스도교도에 관용령으로 신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국고로 몰수한 교회 재산의 반환을 명하였다
2) 1807년 나폴레옹 1세가 발표한 칙령이다. 영국에 압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베를린 칙령에 의해 발효된 대륙봉쇄령을 또 다시 강화하여 발표한 것으로 유럽의 경제지배권을 프랑스가 장악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영국이 이에 대응하여 역으로 프랑스와 그 동맹국들의 무역을 봉쇄하는 조치를 취하였으며 유럽 이외의 신대륙과 무역이 가능했던 영국과 달리 프랑스의 동맹국들은 경제적 곤란함에 처하게 되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영국과 밀무역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중 러시아의 밀무역은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의 원인이 되었다 .
베를린칙령
대륙봉쇄령(大陸封鎖令)이라고도 한다. 1806년 10월 나폴레옹 1세는 예나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파한 뒤, 베를린에 입성하여 이 칙령을 선포, 대영(對英)전략을 경제전략으로 전화시켰다.
전문 8조, 본문 11조로 되어 있으며, 영국과의 통상·통신을 금지한다는 것을 비롯하여 점령지대의 영국인을 포로로 하고 그들의 상품을 몰수하며, 영국 및 그 식민지로부터의 상선을 기항(寄港)시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규정하였다.
영국 타도를 목적으로 한 이 칙령은, 영국뿐만 아니라 나폴레옹 1세의 지배 아래에 있던 대륙 여러 나라에 고통을 줌으로써 그들의 이반(離叛)을 촉진시켰으며 그 선봉인 러시아를 꺾기 위하여 러시아 원정을 감행하였으나 실패로 끝나 나폴레옹 1세는 몰락하였다.
교황청 역사
1) 초대 교황인 사도 베들 교황청 :
베드로 사도는 스승인 예수의 십자가상 죽음 후 복음 전파를 위해 로마로 오게 됨. 몇 년간 신자들의 집에 숨어살면서 전교를 하고 있던 그는 자신을 따르는 다른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함께 당시 황제인 네로(Nero Claudius Caesar Germanicus, A.D. 37~68)로부터 로마 대화재의 범인 누명을 뒤집어쓰고 순교하게 됨. 이로부터 300여 년 동안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됨. 베드로가 순교하자 살아남은 신자들이 그 시신을 순교한 경기장 근처에 묻어 주고 그 위에 작은 경당을 짓게 됨.
가톨릭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교회의 수위권을 받은 '지상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베드로 사도를 초대 교황으로 인정하고 그 후계자들도 그와 같은 전통을 따라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받아들이고 있음.
오랜 기간의 박해 시기가 끝나고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됨.
2) 이탈리아의 통일과 교황령의 소멸
756년 프랑크왕국의 재상 피핀(Pipin)이 라벤나와 부르군트 지방의 총독령을 교황에게 바치면서 시작된 교황령(敎皇領, Status Pontificius)은 봉건제도와 함께 서구 중세사회의 양대 지주로서 막강한 권력과 영토를 갖게 됨.
교황령은 19세기 전반기에 벌써 두 번이나 일시적으로 붕괴된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1809년 나폴레옹에 의해 교황령이 합병되어 당시 교황 비오 7세가 사보나에 감금당했었고, 두 번째는 그 후 40년이 지나 로마에 혁명정부가 들어서 교황령의 종말을 선언했을 때임. 혼란스러운 혁명기가 끝나자 교황은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옴.
1870년 '이탈리아의 통일'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교황은 막강한 세속적인 지배권을 상실하게 되고, 이로 인해 8세기 이후부터 존재해 왔던 교황령은 소멸하게 됨.
신생 이탈리아는 시민 공동체가 승인한 국가인 데다, 교황령을 마지막까지 수호했던 프랑스 군대마저 철수하고 만 상태에서 외국의 원조도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음. 당시 교황 비오 9세는 적국에 포위된 채 바티칸에 갇혀 있었음.
3) 무솔리니와의 라테란 조약 체결, 바티칸의 회복
막강했던 교황령이 소멸된 지 50여 년이 지난 1922년 학자이자 외교관이며 저명한 언어 학자이자 고문서학자인 아킬레 라티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됨. 비오 11세(1922- 1939)를 교황명으로 선택한 새 교황은 즉위 직후 그때까지 갈등을 겪고 있던 문제, 즉 교황청과 이탈리아왕국과의 관계를 정립하려 시도함. 교황청은 이탈리아왕국을 인정하고, 이탈리아왕국 역시 교황청을 하나의 독립된 중립 국가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라테란 조약이 1929년 2월 11일 체결됨.
'바티칸'은 분명히 구분되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진 구조로 등장했음. 즉 교황은 가톨릭 세계 교회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기구인 '로마 교황청'을 이끌게 되었고, 교황청은 이탈리아로부터 국제법상 독립 주체로 승인되었으며, 동시에 이탈리아는 바티칸에 0.44km2 크기의 국가적 기반을 양보하게 됨. 이로써 비록 세속적인 힘은 상실했지만, 그 대신 영적 · 정신적 영향력으로 세계에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오늘날의 바티칸시국(State of Vatican City)이 탄생하게 되었음.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
안녕하세요 흔한 직장인입니다. 오늘의 글은 위와 같이 교황, 콘클라베 관련 기사를 가져와 봤습니다.
사실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교황이 서거를 하여서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콘클라베를 한다고 합니다.
콘클라베 크게 보면 선거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 선거” 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려고 합니다.
선거 라고 하면 저는 아직까지는 선거말고 다른 대체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선거가 일반인의 생각과 손으로 직접 자신의 나라의 리더를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선출된 리더의 정책활동 등을 보면서 ,, 나라의 상태가 일반인들이 보기에도 이상하게 변화를 하게되는 것을 보면
이렇게 선출하는게 정답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던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물론 개개인의 생각이나 관념이 다르니 나라에서 전부 수용할 수 없으니 어느 정도는 타협안이 필요한 일이 있다고는 알고있지만,,)
또한 한국 같은 경우 일반인들이 직접 투표를 하여 뽑았서 선출하는 것이여서 ,, 선출 이후 선출된 리더가 일반인들 생각에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으면 목소리를 내여 바꿀려고 시도를 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최근 목소리를 내는 상황들이 있었죠)
이렇게보면 선거 자체가 막 나쁘다기는 보다는 선출 후보들이 (조금은) 제한적이고 정치적으로 얽혀있어 일반인들의 관점에서는 과거 리더들을 겪여서 많은 후보자들이 있어도 신뢰성이 많이 떨어져 믿음이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믿음은 그 후보자 혼자 개선의 노력을 보이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그 후보자가 소속된 집단 자체에서 단발성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하여 결과로까지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느낌니다. (이것은 한국뿐만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선거말고 새로운 대체방안이 있을까요??? 아니면 현재 선거에서 수정을 해야하는 부분들이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선거라고 하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실까요??
오늘도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이 글은 개인적인 느낌일뿐 정치적인은 전혀 없습니다.

'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제 정세 이야기] 홍콩서 민주운동가 부친 체포…수배자 가족에 국가보안법 첫적용 (0) | 2025.05.05 |
---|---|
[국제 정세 이야기] 그린란드 총리 "우린 사고파는 부동산 아냐…덴마크와 함께해" (0) | 2025.05.01 |
[국제 정세 이야기] [트럼프 100일]50501·핸즈오프·샌더스…反트럼프시위 조직적 확산 (10) | 2025.04.28 |
[국제 정세 이야기] 英, 시리아 중앙은행 등 24개 기관·기업 제재 해제 (0) | 2025.04.26 |
[국제 정세 이야기] 흔들리는 국채·여행객 감소·과학두뇌 유출·스위스로 富 이전...트럼프에 놀란 세계, ‘탈미국’ 가속 페달 [★★글로벌] (22) | 2025.04.23 |